에세이

김영하 『여행의 이유』 책 리뷰|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책장 너머의 이야기 2026. 9. 13. 14:22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여행을 가세요?”라고 물어보면 생각보다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새로운 장소를 보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쉬고 싶어서 떠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막상 이유를 하나로 정리하려고 하면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여행을 단순히 새로운 장소에 다녀오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따라가다 보니 여행은 익숙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나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경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왜 떠나는지는 몰랐다

여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장소다.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볼 것인지, 무엇을 먹을 것인지부터 생각하게 된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자연스럽게 일정과 교통편, 숙소 같은 것부터 확인한다.

 

나 역시 여행을 생각하면 이런 현실적인 부분부터 떠올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여행의 이유』는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었다.

 

김영하는 자신의 여행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여행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어디를 여행했는가’보다 ‘왜 여행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관심이 생긴다.

 

이 부분이 이 책을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와 다르게 느끼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책 리뷰|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김영하 『여행의 이유』 책 리뷰|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여행은 익숙한 나에게서 잠시 벗어나는 일

평소에는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과 지내는지, 평소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낯선 장소에 가면 이런 기준이 조금씩 사라진다.

 

평소 자주 가던 길도 없고, 익숙한 사람도 없으며, 모든 것이 내가 알던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간단한 주문이나 길을 찾는 일조차 평소보다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이런 불편함이 여행의 단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그 낯섦이 여행의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환경에서는 굳이 의식하지 않았던 나의 행동이나 취향을 낯선 장소에서는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여행에서 기존의 정체성을 내려놓고 ‘노바디(nobody)’가 되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익숙한 환경에서 정해져 있던 나의 모습이 흔들리면서 오히려 자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 여행을 떠올리게 됐다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특정 여행지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내 경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유명한 관광지를 보았던 순간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보았던 거리의 모습이나 우연히 들어간 가게, 예상하지 못했던 작은 실수 같은 것들이 더 오래 기억나는 경우도 있다.

 

당시에는 별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던 장면인데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그런 순간이 여행의 기억으로 남는다.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이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계획한 장소를 모두 방문하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만나고, 그 상황에 적응하고,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는 과정 자체가 여행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낯섦’에 있다

일상에서는 대부분의 행동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어디에서 밥을 먹을지, 어떻게 이동할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에서는 그렇지 않다.

 

길을 잘못 들 수도 있고,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을 만날 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문화 때문에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낯선 상황이 오히려 여행을 기억에 남게 만든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 여행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었던 여행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김영하의 여행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행의 재미가 단순한 편안함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서툴더라도 새로운 환경에 나를 놓아보는 경험이 여행의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보다 사람일지도 모른다

『여행의 이유』에서 인상 깊었던 또 하나의 부분은 ‘환대’에 대한 생각이었다.

 

여행자는 낯선 장소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곳에서는 내가 원래 누구였는지 잘 모른다. 그저 새로운 장소에 도착한 한 명의 여행자일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친절하게 말을 건네거나 도움을 준다면 그 경험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생각해보면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관광지만이 아니다.

 

길을 알려준 사람, 친절하게 대해준 직원, 예상하지 못한 도움을 받았던 순간처럼 사람과 관련된 기억도 여행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여행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낯선 장소에서 받은 작은 친절이 여행 전체의 인상을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일상에서 도망치는 것일까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우리는 흔히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나도 피곤하거나 반복되는 생활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 여행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여행이 단순히 현실을 피해가는 방법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잠시 일상에서 떨어져 있어야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생활을 반복할 때는 내가 무엇 때문에 지치고 있는지조차 정확히 알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런데 환경이 바뀌면 평소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을 다녀온 뒤 일상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닌데도 조금 다르게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여행의 진짜 의미는 떠나 있는 시간보다 다시 돌아왔을 때 발견하게 되는 변화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과 글쓰기가 연결되는 이유

김영하는 소설가이면서 여행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행의 이유』에서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글쓰기에 관한 생각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여행을 하면 평소보다 많은 것을 관찰하게 된다.

 

처음 보는 장소를 바라보고, 사람들의 행동을 살피고, 평소에는 지나쳤을 작은 풍경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 경험이 작가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독자로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느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장면을 여행 중에는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책을 통해 익숙한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 에세이이면서 동시에 관찰과 생각에 관한 책처럼 느껴졌다.

여행을 하지 못하는 시간에도 여행을 생각할 수 있다

『여행의 이유』 개정증보판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여행이 어려웠던 시기를 생각하는 「여행이 불가능한 시대의 여행법」이 추가됐다.

 

이 부분은 여행이라는 것이 반드시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야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익숙한 길에서 조금 돌아가 보는 것, 평소 가지 않던 장소에 가보는 것, 새로운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물론 실제 여행과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태도는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보다 여행을 준비할 때 더 설렐 때

여행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설렘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어디에 갈지 찾아보고, 숙소를 알아보고, 가볼 곳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여행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반대로 여행이 끝난 뒤에는 사진을 정리하거나 당시의 일을 떠올리면서 또 한 번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여행은 출발하는 순간부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경험하고, 기억하는 과정 전체에 걸쳐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여행을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했던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여행은 일상과 분리된 며칠의 시간이 아니라 일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경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여행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여행을 생각할 때 ‘어디에 갈까?’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왜 떠나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생각하게 됐다.

 

새로운 장소를 보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쉬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때로는 지금의 나를 잠시 내려놓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다시 돌아온 일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가 좋았던 이유는 여행에 대한 하나의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행을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작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여행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에는 김영하의 여행을 따라가지만, 책을 덮을 때쯤에는 어느새 나의 여행을 생각하고 있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여행지를 소개하는 실용적인 여행책을 기대한다면 이 책은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맛집이나 관광지 정보가 중심인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여행을 좋아하지만 ‘나는 왜 여행을 좋아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도 잘 어울린다.

 

여행지를 정하는 방법보다는 여행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 것인지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을 당장 떠날 수 없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다.

 

일상과 낯선 세계, 인간관계와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꼭 여행 중에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다.

책을 덮고 나서 남은 질문

『여행의 이유』를 읽고 나니 여행에 관한 질문 하나가 남았다.

 

나는 여행을 통해 무엇에서 벗어나고, 무엇을 다시 만나고 싶은 걸까.

 

여행을 떠나면 장소가 바뀐다.

 

그렇다면 여행의 의미는 일상을 완전히 버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다른 곳에 다녀온 뒤 익숙했던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는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경험을 통해 인간과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에세이였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여행 에세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덮은 뒤에는 여행뿐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여행을 돌아보게 하고, 여행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는 ‘사람은 왜 익숙한 곳을 떠나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결국 여행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풍경을 만나기 위해 떠나고, 누군가는 쉬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익숙한 자신을 잠시 내려놓기 위해 떠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여행을 단순히 어디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떠남을 통해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가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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